살카즈의 영겁 기담결말 기록덫에 걸린 날
결말 기록 · 결말 기록 · 완벽한 하루
덫에 걸린 날
해금 조건: 관련 스토리 발동 필요
엔딩 완벽한 하루
그날,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지옥문을 열었다.
의사, 환자, 용병 모두 포화 속에서 공평하게 죽어나갔고, 적을 죽이기 위해 규칙도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처음으로 내던져졌다.
아미야는 운 좋게 살아남았으나,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던 용병 일인자는 결국 방패와 함께 초토화된 숲에서 녹아버렸다.
전투 구역을 벗어나기 전, 아미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포화는 두 방향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적들이 방어선을 돌파한 건지, 아니면 아군이 이를 빌미로 감염자를 제거하려 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아미야는 자신의 사명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포화가 멈춘 후, 그녀는 곧바로 잿빛 대지를 훑으며 시신을 수습했고 생존자를 구했다. 아무리 의사가 전쟁의 부속품이 되었을지언정, 애써 구한 생명이 몇 분 후에 사라질 운명이라도 아미야는 여전히 의사로서 인명 구조를 계속했다.
그녀는 이 또한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대지는 그녀의 노력을 부정한 채, 계속해서 그녀에게 참혹한 현실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닷속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몇 년 후, 아미야는 전선에서 강제로 차출되어 한 특별 소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들의 리더는 이 소대는 '전쟁을 종결지을 비결'을 찾아낼 것이며 충분한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아미야는 그들을 따라 수많은 유적지에 들어갔다. 다만, 그 속에 남겨진 전 문명의 삶의 흔적은 이 폭도들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기였다.
아미야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소대는 이미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다. 넓은 공간에는 한 줄기의 빛조차 없었고, 바닥과 사방의 벽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돌기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전체 공간의 중심엔 거대한 구형 기구가 자리 잡고 있었으나, 이미 오래전에 망가진 듯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곳에서 그 어떤 형태의 '무기'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곳이 지하 군사 요새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리더는 표식을 남긴 뒤 소대를 이끌고 지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유적지를 노리는 것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지하 시설 입구에서 매복을 당한 아미야 소대는 거센 화력에 순식간에 많은 희생자를 냈다. 교착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리더는 아미야에게 지하로 내려가 그 구형 기구에 빛을 비춰 적을 현혹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컬럼비아인들이 그 기구를 무기라고 믿게 하면 조금이라도 협상의 여지가 생길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미야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 발판을 넘어 조사할 때 설치해 둔 조명을 켜려고 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폭발의 충격파가 덮쳐와 아미야를 날려버렸다.
……
깨어나……
깨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서 깨어나는 건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깨어난 후에 마주할 것이 괴로움인지 고난인지……
아니면 죽음인지 아무도 모르니까.
아미야가 눈을 떴을 때, 지하 공간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미야는 그게 조명탄의 빛이라 생각했다. 즉, 밖에 있던 용병들이 안까지 밀고 들어와 저항하는 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발소리, 대화 소리, 조명탄이 타오르는 소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오직 자신의 숨소리뿐.
눈길이 닿은 곳에는 구형 기계가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장 난 게 아니었나? 지금 작동하고 있는 건가?
그 기계는 마치 하나의 눈처럼 눈앞의 작은 생명체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
아미야는 기계가 한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문명의 존속', 그게 뭐지?
그녀는 그저 의사이자 무력한 생존자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곧 죽을 운명이었다. 폭발로 인해 바위 파편에 관통된 그녀는 점점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보존자'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대신 스캔을 수행했다.
'문명의 존속'과 오리지늄이 이 죽어가는 작은 생명체 안에 함께 있었다.
하나는 존재하면서 아직 가동되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존재하면서 지속적으로 숙주를 '개조'하고 있었다.
기록…… 전환……
오랫동안 침묵하던 프리스턴의 사고가 갑자기 영감을 주었다.
그는 이 생명체를 구해보기로 했다.
한 '석관'이 아미야 곁에 떠올랐다.
보존자 프로젝트에서 추가적인 생명유지 장치가 필요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프리스턴은 설계 당시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장치를 몇 개 준비해두었다. 물론 그 돌발 상황이라는 것이 설마 보존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새로운 종족 개체를 살리기 위한 시도가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붉은빛이 갑자기 약해졌고, 그 대신 아미야 눈앞의 생명유지 장치는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자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꼬마 토끼.” 어두워진 구형 기계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오리지늄과 새로운 종족의 혈통이 들어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구나. 이 기계가 짊어진 모든 사명은 지금 발생하는 일과 무관하니.”
“물론 자네에게 거는 기대는 있긴 하지만, 그 모든 기대는 결국 자네가 살아있다는 전제하에 세운 거다.”
“그러니, 살아남거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 전체를 비추던 붉은빛은 빠르게 사라졌고, 남은 건 부드러운 빛을 내뿜는 직육면체의 선실과 살아남고자 애쓰는 카우투스 뿐이었다.
아미야는 허우적대며 일어나고, 기대고, 구르고, 누웠다. 선실의 문은 닫혔고, 지시등은 전부 꺼졌으며, 귓가에선 한동안 무언가가 배출되는 소리만 들려왔다. 곧이어 어떤 물질이 아미야를 감쌌으나, 그녀는 질식보다 오히려 고통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뒤이어 감각, 그리고 인식, 이어서……
……
증식한 오리지늄이 한때 탄소 조직이었던 공간을 모조리 삼켜버리자, 작고 작은 왕관이 오리지늄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미야가 잠들어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깨어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시야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이 협소한 공간은 정지된 인류로 가득 차 있었다. 희망을 품고 여기서 잠든 그들 대부분은 이미 죽음으로 인해 가슴이 열려 다시는 깨어날 수 없었다.
그 거대한 구체 속에 갇힌 그들의 수호자는 책임과 헌신으로 감옥을 만들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절망과 고독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입구에는 몇몇 시체가 흩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생존에 대한 갈망이 초래한 죽음의 결과였다. 물론, 그것은 원인의 일부일 뿐, 근본적인 원인은……
대지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전쟁, 기근, 재앙, 탐욕, 원한, 질투……수많은 병증이 사람들에게 덮쳐 이 대지에는 건강한 자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해마다, 세대마다 사람들은 병에 시달리며 살아갔고, 결국 병에 걸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오히려 회복을 바라는 것이 병태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미야는 자신에게 물었다.
정보가 전달되고 있었다……
결정이 된 자신, 분진이 된 자신, 광맥이 된 자신 모두가 이 문제의 답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응축되고, 흩날리고, 터져 나오고, 정련되어, 마침내 아미야를 데리고 태고의 궁전까지 도달했다.
그곳에는 두 신이 있었으나, 그들은 침묵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미야는 검은 왕관을 쓰고는 신들에게 기도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길 원했다.
곧이어 신들이 그녀에게 응답했다.
한 명은 빛으로 아미야를 감쌌고, 다른 한 명은 검은 돌로 그녀를 덮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빛이 그녀를 희망 속에 고정했고, 단단하고 매끄러운 돌은 그녀를 외부의 변화로부터 차단했다.
그 안에서 그녀가 슬퍼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미야는 그것을 거절했다.
……
석관이 열렸다. 아미야가 그 안에서 깨어나자, 공간 전체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계는 아미야 머리 위의 검은 왕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문명의 존속'이 멸망을 막는 답을 남겼는가, 꼬마 토끼?”
아미야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는 석관만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하얀 빛이, 이어서 단단한 오리지늄이 그것을 감싸더니, 그 석관은 완전히 밀봉되었다.
“이건 답이 아니에요. 구원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완전히 정지된 상태라면 시간이나 외부 영향을 받지 않아. 내 동포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요.”
“멸망의 종점에 이르지 않은 한, 어떤 것도 만회할 기회는 있는 법이야…… 꼬마 토끼, 자네 이름은?”
“아미야.”
“고맙구나, 아미야. 이게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답을 찾아 나서면 돼.”
“자네라면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졸리는구나……”
거대한 기계는 침묵했고, 빛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그 소멸이 현실이 되기 전에, 아미야는 자신의 힘을 사용했다.
잠시 후, 아미야는 거대한 오리지늄 결정 앞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는 것도 일종의 학살이 아닐까?
하지만 그 미래가 죽음 그 자체라면, 이 또한 구원이 아닌가?
눈앞의 무수히 늘어선 석관들을 바라보며, 아미야는 마음에 떠오른 의문을 잠시 접어두었다.
적어도 지금, 그녀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