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키 & 카이룰라 아버월간 분대 기록등불을 든 자 3

월간 분대 기록 · 2023.07 월간 분대 · 5층 신성한 동굴

등불을 든 자 3

그녀는 등불을 뒤에 남기고 홀로 파도에 맞섰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이네.” 여전히 서 있는 그녀는 레이피어를 닦으며 말했다. “저 사람은 나를 공격하려는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 착각한 모양이야. 죽을 때까지도 아마 자신은 빅토리아 병사고,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도대체 언제부터……”

“저번 전투에서, 어쩌면 더 오래전이었을지도 몰라. 아마 자신도 알아채지 못했을 테지. 어쩌면 절망적인 싸움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적의 체조직을 삼켜버렸고, 그렇게 변화의 씨앗이 심어졌을지도 몰라.” 그녀는 에기르인을 흘깃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누구나 전장에서 살아남길 원하지. 이건 시테러도 마찬가지야.”

후드 밑에 있는 두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재판관이 틀림없다. 에기르인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고, 병사의 세포가 입에 들어가기라도 한 듯 연신 침을 뱉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나란히 걸어갔다. 동굴 깊이 들어갈수록 악취가 더 심해졌다.

“이렇게 많은 시테러 시체가…… 전부 당신이 죽인 건가요?”

“한 마리라도 절벽 위에 기어 올라가게 둘 순 없으니까.”

“다…… 당신,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싸우고 있었던 겁니까?”

“아직 부족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에…… 한 선장을 만난 적이 있어. 자신의 함선을 진정한 이베리아라고 불렀지. 그러면서 자신의 이베리아를 60년 동안 지켰다고 했어.”

“60년……”

“아마 우리에겐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을 테지. 하지만 해안선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 한, 이베리아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도 쉽게 죽지는 않을 거야.”

그들은 어느새 좁은 균열 앞까지 왔다. 이곳에는 시테러의 시체가 없었고,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은은하게 맡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혼자 가야 해. 그 등불은 가져가.”

“그럼 당신은?”

“나?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거야? 그런 얼빠진 상태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 보니, 어지간히도 운이 좋은가 봐.” 그녀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느껴졌다. “나도 당신 같은 에기르인을 한 명 알고 있어. 어쩌면 당신들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두 사람은 분명 꿈적도 하지 않았지만, 벽에 비춘 그림자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고 가느다란 무언가가 로브 안에서 미끄러져 나와 몇 번 꿈틀거리고는 다시 들어갔다.

에기르인은 그제서야 눈앞의 이 사람이 왜 등불을 들지 않았는지 이해했다.

병사의 추측이 옳았다. 하지만 에기르인도 재판관의 등불을 들 수 있는 이상, 그녀의 정체 따위는 뭐가 중요하겠는가?

“이 등불은 재판관의 상징이자, 재판관의 의지로 밝히는 것이야. 에기르인, 이 등불을 당신한테 맡길게. 당신의 앞길에…… 이베리아의 앞길에는 더 많은 빛이 필요할 테니까.”

에기르인은 재판관의 등불을 꽉 쥐었다.

“그럼 당신은요? 제가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사람들을 불러서……” 순간, 로브 밑에 숨겨진 촉수가 문득 떠오른 에기르인은 더 이상 말해 봤자 눈앞에 있는 사람에겐 의미가 없을 거란 걸 깨달았다.

“적어도, 이름만이라도 알려 주지 않겠습니까.”

“내 이름은 아이린, 이베리아인이야.”

재판관이었던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돌려 칠흑 같은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