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분대 기록 · 2023.08 월간 분대 · 5층 신성한 동굴
파수꾼 3
그는 약속대로 영원한 밤 한가운데 있는 등대에 도착했다. 오직 파수꾼만이 폭풍을 직시하고, 오직 그만이 대낮처럼 뜨겁다.
켈시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을 때, 익숙했던 그 여자는 재난 속에서 어느샌가 낯선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마지막 도시의 창시자가 되었고, 더 이상 그 자그마한 함선에서 오퍼레이터 루멘을 교육하던 켈시 선생님이 아니었다. 기억 속 켈시 곁에 있던 사람들은 지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조르디 역시 많은 것을 잃었기에 그 도시에서 살았던 짧은 세월 동안 로도스 아일랜드에 관해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혹여나 재난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의 희망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바다는 여전히 위험하다. 아무리…… 우리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해도.” 조르디의 호소를 듣고도 켈시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생태계 전체의 종속으로서, 위매니의 노예로서, 우리는 그저 공생 관계의 일환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을 뿐, 그것은 결코 우리가……”
켈시는 말을 멈췄다. 그녀는 문득 작별하러 온 사람이 과거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알고 있습니다.” 조르디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요.”
“……호위라도 붙여 줄까?”
“아니요. 그냥 이름 없는 늙은 서기관일 뿐이니, 그럴 가치도 없습니다.”
켈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르디에게 여행에 필요한 이동 수단과 짐을 준비해 주었다. 고향을 보러 가는 것일 뿐, 확실히 출병식 같은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다. 출발하기 직전, 조르디는 마지막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이 도시는 더 이상 이동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평화는 찾아왔지만, 영원히 정체된 문명의 형태로만 위매니에게 허용됐으니.
조르디는 일평생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싸운 적도 없고, 도시의 건설을 위해 진정으로 힘을 보탠 적도 거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가장 하찮은 일만 해왔던 것 같다. 등대가 밝혀질 때도, 함선과 이베리아인들을 인도하는 건 등대의 불빛이지, 등대지기가 아니었으니.
조르디는 절벽 위에 주저앉았다. 시야가 닿을 수 있는 먼바다에서는 산호색을 띤 생물이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고, 매끄러운 갑각류 생물들은 질서정연하게 파도에 따라 딸깍거리며 소리를 냈다. 바다는 잔잔하고 온화했으며, 푸른 하늘은 더없이 맑게 개었다. 인류, 오리지늄, 데몬, 그리고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들을 극복한 뒤, 시본이 세상을 관찰하는 방법은 이미 인류가 감각 기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뛰어넘었다.
조르디는 새로 탄생한 이 키틴질의 신이 바다 위 어딘가, 햇빛과 구름 사이 아무도 모르는 틈새에 말없이 가만히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한 인간이 둥지를 떠나 해안선을 향해 출발했을 때부터, 그것의 촉수는 은신처를 떠나 이 특이한 개체의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제 그것은 테라 그 자체이자, 드넓은 바다를 누비는 위매니의 동족들에게 딱 맞는 비콘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예상외로, 이 개체는 인류의 빈약한 두 눈으로 그것의 의지를 포착한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바다여.” 테라에 존재하는 위매니 개체들이 자기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노인이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조르디는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조르디, 조르디 폰타나로사. 한때 당신들의 하찮은 적이었죠.”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조르디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란파로. 에기르. 스툴티페라 나비스. 어비설 헌터스. 귀향. 전쟁. 붕괴. 각성. 신. 진실. 실패. 죽음. 이별. 치욕. 평화.
그의 말은 빨라지다가도 느려졌고, 소리는 커지기도 줄어들기도 했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바람이 해변의 기이한 형태의 종려나무를 보듬었고, 산호초로 된 바위 구멍에서 소리만 날 뿐이었다.
노인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저 해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호응이라도 하듯, 바닷물이 미생물의 작용으로 순식간에 탁해졌으며, 갑각류 시테러들이 한데 몰려들어 뒤엉키고 뒤틀리면서 작은 배 한 척이 만들어졌다.
위매니는 그의 생각을 읽었고, 위매니는 그의 생각을 구현했다. 하지만 조르디는 위매니의 행위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고, 그저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닙니다. 오해예요. 유감스럽지만, 당신이 졌습니다.”
파도는 대답하지 않았고, 이베리아의 마지막 수호자 또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햇살은 변함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그리고 갑각류 생물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어느 순간 완벽하게 겹쳤다. 위매니 중의 한 개체가, 마찬가지로 위매니 전체가, 이 어머니 별에 기생한 작은 개체의 유언에 응답했다.
“안녕히, 조르디 폰타나로사.”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