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키 & 카이룰라 아버월간 분대 기록파수꾼 1

월간 분대 기록 · 2023.08 월간 분대 · 1층 하늘빛 해안

파수꾼 1

옛 친구들의 관이 숲처럼 늘어서 있었고, 그는 쓸쓸하게 긴 신생을 기다린다.

이베리아 해안은 날씨가 급변하기 쉽다. 조르디 폰타나로사는 매주 일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오늘만큼은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에 참을 수 없어, 마치 차가운 폭포수가 심장에 떨어지는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일을 멈추고 서류로 가득 찬 방을 도망치듯 나왔다.

빗물이 땅에 떨어져 부서지는 순간, 조르디의 코에는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축축한 흙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이는 날씨나 계절뿐만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선에서 소식이 들려오고, 축축한 공기가 코를 가득 채울 때마다 조르디는 이 시대에 대한 인상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에기르가 멸망하고 나서부터 쭉 그래 왔다.

해 질 녘이 다가오자 등대의 불빛은 이베리아의 마지막 요새를 붉게 물들였다. 가는 길에 조르디는 징벌군 장교들의 대화에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엄격한 통제를 받는 우울한 말투, 후방 장교들의 하소연까지, 그들은 이제 무감각해져 낙담하지도, 그렇다고 투지가 넘친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세며 걸어가던 조르디는 한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상대가 입을 열자 조르디는 깜짝 놀랐다. 자신과 부딪힌 사람이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다. 비록 이곳은 중심구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핏자국이 묻어 있었고, 건장한 체격에 한쪽 팔이 없었으며, 키는 조르디와 비슷했다. 처음에 조르디는 그가 베테랑 징벌군인 줄 알았지만, 그와 시선이 마주치면서 그의 배낭에 들어 있는 낡은 등불과 검을 보자, 그가 에기르 출신의 젊은 견습 재판관이라는 걸 눈치챘다.

조르디는 그와 같은 젊은 재판관 한 명을 알고 있었다.

“막 돌아온 건가?”

“그렇습니다, 서기관님.”

젊은 재판관은 의외로 차분했다. 마치 악몽과도 같은 전쟁터를 뒷전에 버리고 온 것처럼. 그러나 이미 익숙해진 조르디는 이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잔혹함에 익숙해진 게 아니라, 슬픔에 익숙해졌다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젊은 재판관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지금의 재판소에 재판관이 많지 않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젊은 재판관은 목례를 하곤 조르디를 스쳐 지나갔다. 그의 비틀거리는 뒷모습은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언제 녹아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했다.

조르디는 무심결에 뒤돌아보며 이렇게 물었다. “자네 이름이?”

“마티아스입니다.”

“에기르 이름은 아닌 것 같군……”

“양어머님께서 이베리아인이시니까요. 지금은 에기르의 성씨만 남았지만요.” 젊은 재판관은 주저하고 있었다. 이런 사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해야 싶은 듯했으나,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브레오간입니다.”

“응?”

“저의 가문이 브레오간입니다. 이것만 알았지, 나머지는 하나도 모릅니다. 심지에 이게 성씨인지, 아니면 어느 조상님의 이름인지도 저는 모릅니다. 아무튼 저의 고향은 이미……”

조르디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짧은 침묵을 먼저 깬 건 젊은 재판관이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 성도 카르멘 님의…… 음, 제자분이시죠?”

그 이름은 조르디의 가슴 통증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너무나도 격한 감정에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그는 순간적인 어지러움을 간신이 참아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그리곤 자학에 가까운 말투로 되물었다. “왜, 실망했나, 젊은 재판관? 지금 같은 비상시기에 자네들과 함께 싸워주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젊은 재판관은 조르디가 자기 말을 오해했다는 걸 알아채곤,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카르멘 님께선 우리 같은 사람은 불씨를 지키는 사람이고, 당신들이야말로 그 불씨라고 하셨죠.”

조르디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북받치는 오열을 간신히 억누른 뒤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맙네. 공교롭게도…… 브레오간이란 이름은 나랑도 조금 관계가 있지. 비록 지금은 나와의 연결고리를 증명할 순 없지만, 나는 브레오간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어.”

“조선공의 전설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서기관님.”

“아니.” 순간 말을 멈춘 조르디의 뇌리에는 과거의 여러 사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에기르에 가본 적이 있다. 고향에 간 적이 있지.”

젊은 재판관의 눈에서 한 줄기의 빛이 반짝였지만, 이내 다른 일이 젊은이의 핏줄에 대한 동경을 가로막았다.

“죄송합니다. 그 얘기는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때……”

그렇게 젊은 재판관은 떠났다.

빗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어디선가 밤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르디는 다시 지저분한 작업실에 돌아왔다. 그는 어지럽혀진 책상을 몇 주 전처럼 깔끔하게 정리하곤, 책상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지만,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두려움, 슬픔, 분함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타자기가 적셔지지 않도록 눈물을 꾹 참는 것뿐이었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실종자'의 아래에 몇 글자를 입력했다.

“카르멘 이 이베리아, 사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