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분대 기록 · 2023.08 월간 분대 · 3층 맹렬한 파도
파수꾼 2
주시, 명심, 전승.
“1,300킬로미터.”
불쑥 튀어나온 말에 조르디는 자신이 결례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난 뒤였다. 그러나 조르디가 한 말의 의미를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은 앞서가고 있던 대재판관 아이린이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홀에 있는 전술판을 향해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란파로의 등대가 여기서 1,300킬로미터지.” 아이린은 잠깐 회상에 잠겼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 의미는 우리 국토가, 인류의 방어선이 1,300킬로미터나 후퇴했다는 뜻이야.”
조르디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약 각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 숫자가 더 커졌을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테라의 모든 병력이 이베리아의 전선에 집중되어 있고, 우리에겐 제2의 방어선이 없다는 말이야. 이 1,300킬로미터의 땅은 이미 바다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아이린의 말을 들으면서도 조르디는 계속 길가의 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방어선이 결코 견고한 건 아니에요. 시본이 이베리아 쪽으로만 침략해 오는 게 아니라…… 사르곤, 우르수스, 염국, 전쟁의 불길은 이미 대륙 전체에 퍼졌습니다.”
“맞아, 그게 이번 임무의 사명이야. 시본이 빅토리아의 자작이나, 사르곤의 파디샤로 위장할 수 있는 한, 우리의 방어선은 이미 함락된 거나 다름없지.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시테러를 이끄는 주교를 전부 몰살했음에도 시본이 여전히 자발적으로 육지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걸 보면, 무언가가 놈들을 이끄는 게 분명해.”
조르디는 깜짝 놀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심해 자작은 이미 죽었잖습니까! 라이타니엔의 금률법위의 손에 죽었는데! 설마 그 밖에도……”
“어쩌면 위매니가 더 큰 위기를 감지했을지도 모르지. 생존이라는 목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지 생태계를 통합하려는 것일 수도 있어.”
아이린은 커다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조르디는 이곳에서 십여 년을 생활했지만, 이 구역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공해야 해.” 아이린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예전의 그 세련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그저 창백한 낯빛만 가득했다. “그것 때문에 다시 대재판관을 맡은 거니까.”
“네, 그렇겠지요. 사실 당신에겐 명실상부한 자리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대재판관으로서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아이린은 들고 있던 불을 들어 올렸다. 홀은 순식간에 빛으로 가득 찼고, 어둠이 문에서 사라지자 불빛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 커다란 방은 예전에 감옥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용광로나 공방으로 사용됐고, 지금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방 한구석에서 먼지가 잔뜩 쌓인 채로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방 중앙에는 '등불'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예전에 이곳에는 시본이 갇혀 있었어. 모든 재판관은 정식으로 부임하기 전에 이곳에 와서 바다의 진실을 배우게 되는 거였지.” 아이린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래서…… 이곳을 대장간으로…… 개조한 건가요?”
“맞아.”
“저 등불은요?”
아이린은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다가가듯 등불에 다가갔다. 그녀가 등불을 집어 들자 눈 부신 빛이 조르디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등불이라기보다는 태양 같았다.
“카르멘, 다리오, 요한, 카를로스…… 회수할 수 있는 모든 재판관의 등불을 모아 다시 이것으로 주조했지. 이름은 몇 개나 생각해봤지만, 아직 결정하진 못했어.” 아이린이 아츠의 시전을 멈추자, 빛은 순식간에 그 자그마한 유리 감옥 안으로 돌아갔다. “너라면 좋은 이름을 지어줄 수도 있겠네. 재판소는 이걸 네게 맡기기로 했어.”
“저 말입니까!?”
“등불을 쓸 줄 모르는 거야?”
“아니…… 압니다. 카르멘 님께 배운 적은 있지만…… 그래도 재판관처럼 하기에는……”
“괜찮아, 빛을 밝힐 수만 있다면 충분해. 정 안 된다면, 다음 사람을 찾아 넘겨줘도 되고.” 아이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조르디는 그제야 둘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걸 떠올렸다. “너는 재판소의 항쟁을 지켜봤고, 등대에서 우리의 개선도 지켜봤었지. 그 영웅들을 기억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도 기억할 테고. 이 등불은 무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희망이야.”
아이린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그걸 계속해서 전해줘”
“그럼 당신은요?” 조르디는 거의 그녀와 동시에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쓰러뜨려야 할 시본은…… 이미 코드네임도 있어. 그 코드네임은……” 아이린은 등불을 내려놓았고, 희미해진 불빛 속에서 문의 저편을 향해 걸어갔다.
“글래디아.”